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작위 요구자/아프리카 (문단 편집) === 에티오피아 황제 === ||<-3><#ffffff> [[파일:에티오피아 제국 국장.svg|width=200]] || || 관련 칭호 ||<-2> 에티오피아 황제([[느구서 너거스트]]) || || 작위 요구자 || {{{-2 ([[하일레 셀라시에]]의 후손)}}}[br]자라 야코브 암하 셀라시에 || {{{-2 ([[이야수 5세]]의 후손)}}}[br]지르마 요한느스 이야수 || || 전임자 || 하일레 셀라시에 2세 || 리즈 요한느스 이야수 || || 후임자 || 아바베 || 리즈 카에로드 지르마 || || 계승 실패 원인 ||<-2> [[하일레 셀라시에|1916년 이야수 5세 폐위]]{{{-2 (이야수 5세의 후손)}}}[br][[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1975년 제국 멸망]] || 이른바 '[[솔로몬 왕조|솔로몬의 후예]]'로 아프리카에서 몇 안되는 문화 국가로 촉망받던 [[에티오피아]]였는데 1974년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멩기스투]]의 군부 쿠데타로 제정이 붕괴되고 1970년대 왕정이 폐지된 직후 [[론 놀]], [[폴 포트]], 행삼린 정권 시기의 캄보디아나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친소련 공산당 정권]]과 무자헤딘/탈레반 정권 시기의 [[아프가니스탄]]과 큰 차이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었다. 오늘날에서 마지막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는 취약점이야 어떻든 나름 명군이었다고 인식되며[* [[하일레 셀라시에]] 치하의 에티오피아는 통념과는 달리 세계 최빈국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으나, 황제가 어떻게든 나라를 최빈국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적극적으로 근대화를 추진하고 경제 발전에 힘을 썼다. 근데 하필이면, 극심한 [[가뭄]]이 닥쳐서 에티오피아의 농업이 완전히 무너져내린 바람에 가뜩이나 열악하던 경제가 폭삭 내려앉아 버렸다. 경제 발전에 적극적으로 나서던 셀라시에였지만 그런 그도 말년에는 사치스러운 행각을 벌여 온 국민의 비판을 받게 되었다. 결국 이는 멩기스투가 쿠데타를 일으킬 좋은 명분이 되었고, 셀라시에는 그대로 권좌에서 내쫓기고 반란군에게 살해되었다. 그러나 멩기스투 본인은 하일레 셀라시에와 달리 폭정은 폭정대로 저지르고 무능함은 무능함대로 보여주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오늘날 에티오피아 국민들이 하일레 실라시에 치세를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독설가]]로 유명한 [[오리아나 팔라치]] 기자는 '''"그래봤자 당신도 결국은 독재자에 불과합니다."'''라고 돌직구를 날려서 극대노한 하일레 셀라시에가 '''"이 미친 여자를 당장 끌어내라!"'''라는 식으로 방방 뛰게 만들었다.] 현재 그의 손자 자라 야코브 암하 셀라시에가 명목상의 [[에티오피아 제국]] 황제위를 요구하고 있다. 한편 하일레 셀라시에의 쿠데타로 폐위된 [[이야수 5세]]의 손자 지르마 요한느스 이야수도 [[에티오피아 제국]] 황제위를 요구하고 있다. 공산당의 학정과 이후로도 계속되는 가난으로 [[에티오피아]] 국민들은 [[다시보니 선녀 같다|하일레 셀라시에 치세를 그리워하기 때문]]에 그의 손자인 자라 야코브 암하 셀라시에를 지지하지만 에티오피아 북부 지역의 [[무슬림]]들은 이야수 5세가 [[이슬람|이슬람교]]로 개종하여 무슬림들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를 믿는 에티오피아 대다수 국민들은 반대로 이야수 5세에게 실망했지만) 이야수 5세의 손자인 지르마 요한느스 이야수를 지지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